Gradient

​광주 ARTIST

김상연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졸업(학사)

​중국, 중국미술대학 회화학부 판화가 졸업(석사)


개인전

2020 카린갤러리(부산)

2019 포스코미술관(서울)

수류헌(진주)

2018 오픈스페이스 배(부산)

2016 기당미술관(제주)

2015 신세계 갤러리 초대전 (광주)

바나나롱 갤러리(부산)

2014 마이클&융 갤러리(광주)

2013 마이클슐츠갤러리 (독일, 베를린)

2012 일단원공간 (북경, 중국)

2011 마이클슐츠갤러리 (서울)

2010 마이클슐츠갤러리 (서울)

2008 센마리팀의회 초대전 (센마리팀의회당 대전시실, 프랑스)

2007 롯데갤러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 프로그램)기획전 (광주)

2005 SAC 2005 올해의 젊은 작가 초대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04 전남도립옥과미술관 초대전 (전남, 옥과)

2003 신세계갤러리 초대전 (광주)

2002 신세계갤러리 초대전 (광주)

2001 신세계갤러리 초대전 (광주)

기노구니야 갤러리 초대전 (일본, 나고야)

2000 오스카갤러리 초대전 (일본, 동경)

단체전

2019 <각자의 시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광주)

<컨템포러리 아트 인 남도 2019> 담빛예술창고(담양)

<동시대 미술, 역사를 말하다> 산수미술관(광주)

<종이충격> 양평미술관(양평)

2018 <아트앳홈Ⅱ: 예술이 가득한 집> 신세계갤러리(광주)

<필문 이선제 묘지(墓誌) 20년만의 광주 귀향 특별 꼴라보> 국립광주박물관(광주)

<남도문화의 원류를 찾아서-보길도> 신세계갤러리(광주)

<한·프랑스 교류 11주년 ‘COREELATION 4’> 지호갤러리/무등갤러리(광주)

<복(福) 받으시개(犬)> 신세계갤러리(광주)

2017 <꼬레라숑(COREELATION)3-화실> 센마리팀의회당(프랑스-루앙)

<대구-인 텍트> 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

<장소예찬-예술가와 여관> 여관프로젝트(제주)

2016 <브릴리언트메모리즈-동행>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서울)

<브릴리언트메모리즈-동행> 광주시립미술관(광주)

<프랑스문화원/파리도서관 한국전시>(프랑스-파리)

2015 <openbooks – 예술가와 그들의 중국책> 온주현대미술관(중국/인도/홍콩/캐나다/미국)

<아시아현대미술> 전북도립미술관(완주)

<1980년 한국형상미술전> 전북도립미술관(완주)

<어린이성찬> 전북도립미술관(완주)

2014 <빛> 유네스코본부 전시장(프랑스-파리)

2013 <all about korea> 화이트박스미술관(독일-뮌헨)

<생명의 빛 아시아> 아시아문화예술인레지던시(광주)

<남도 원류를 찾아서> 신세계갤러리(광주)

2012 <원점의 심도> 상해미술관(중국)

<무등설화> 금일미술관(중국-북경)

2010 <지역네트워크전시> 아르코미술관(서울/광주/부산)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빛2010> 광주시립미술관(광주)

<12띠 동물 이야기> 광주시립미술관(광주)

2009 <우보만리> 신세계갤러리(서울)

<환경미술제> 신세계갤러리(광주)

<지심도> 거제문화회관미술관(거제)

<한국의 단면> 대만국립미술관(대만)

<오즈의 마법사> 신세계갤러리(광주)

<지역네트워크전시> 아르코미술관(서울)

2008 <김환기 국제미술제> 빛 갤러리(서울)

<미술과 놀이>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울)

<컨템포러리 네오 메타포 2008> 인사아트센터(서울)

<광주 미술의 현황과 전망> 인사아트센터(서울)

<화랑미술제> 벡스코(부산)

<역대 지역 참여 작가 근작전시> 광주비엔날레홍보자료관(광주)

<전라도> 롯데갤러리(광주)

<운주사 천불 천탑> 신세계갤러리(광주)

2007 <질투는 작업의 힘, 작업은 열정이다> 대안공간충정각(서울)

<스페인 아르코 특별전 한국-이야기를 펼치다> 마드리드문화체육부미술관(스페인)

<성남 국제 북 아트페어> 율동공원 책 테마파크(성남)

<부산국제판화제> 부산시청(부산)

<宋庄국제미술제-예술연접> 宋庄미술관(중국-북경)

<꼬레라숑(COREELATION)> 센마리팀의회당(프랑스-루앙)

2006 <열풍변주곡-자연과 몸> 광주비엔날레(광주)

<북 아트> 코엑스(서울)

<과거와 현재, 그 사이> 광주시립미술관(광주)

<산전수전> 거제문화예술회관미술관(거제)

<세계 북 아트 페어> 프랑크푸르트미술관(독일)

2005 <조용한 빛, 맑은 기운> 예술박물관(중국)

<made in gwangju> 광주시립미술관(광주)

<환경미술제> 옥과미술관(전남)

<수묵화의 흐름> 관산월미술관(중국-심천)

2004 <생로병사> 광주시립미술관(광주)

<꿈꾸는 동화세상> 롯데갤러리(광주)

<바라보기-자아> 광주시립미술관(광주)

<세계 북 아트페어> 코엑스(서울)

<세계 북 아트페어> 프랑크푸르트미술관(독일)

2003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광주시립미술관(광주)

<uncanny-어떤 낮섦> 라메르갤러리(서울)

<광주 20경> 신세계갤러리(광주)

<작가와 그림책> 롯데화랑(광주)

<중국기행 3,256km> 신세계갤러리(광주)

2002 <젊은 예술가의 초상> 신세계갤러리(광주)

<비상21전> 남도예술회관(광주)

2001 <형상과 비판> 무등예술관(광주)


Kim Sang Yeon

Graduated from College of Fine Arts, Chonnam National University, Korea (BFA)

Graduated from China National Academy of Fine Arts, China (MF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19 posco musuem(Seoul-Korea)

Sulewheon(Jinju-Korea)

2018 OpenSpace Bae(Busan-Korea)

2016 Gidang Musuem of Art(Jeju-Korea)

2015 Shinsegae Gallery(Gwangju-Korea)

2014 SCHOLZ & JUNG Gallery(Gwangju-Korea)

2013 ICHAEL SCHULTZ Gallery(Berlin-Germany)

2012 Unit One Art Space(Beijing-China)

2011 MICHAEL SCHULTZ Gallery(Seoul-Korea)

2010 MICHAEL SCHULTZ Gallery(Seoul, Korea)

2008 Seine-Maritime Grand Salon(Rouen-France)

2007 Lotte Gallery(Gwangju-Korea)

2005 Seoul Art Center Hangaram Art Museum(Seoul-Korea)

2004 Okkwa Art Museum(Jeollanamdo-Korea)

2003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2002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2001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KINOKUNIYA Gallery(Nagoya-Japan)

2000 AOSKA Gallery(Tokyo-Japan)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9 <IN YOUR VIEW> Asia Culture Center(Gwanju, Korea)

<Contemporary Young Artist in Namdo 2019> Dambit Art Space(Damyang-Korea)

<Contemporary Art> Sansu Museum of Art(Gwanju, Korea)

2018 <Art at HomeⅡ>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Special Exhibition> Gwangju National Museum(Gwanju, Korea)

<Bogil-do>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COREELATION 4> Moodeung Gallery(Gwanju, Korea)

<New Year’s Celebration>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2017 <COREELATION3-Atelier> Seine-Maritime Exhibition Hall(France-Rouen)

<Daegu In-tact> Daegu Arts Center(Daegu-Korea)

<Artists & Inn> Inn-Project (Jeju, Korea)

2016 <Brilliant memories> Buk-seoul Museum of art/Gwangju Museum of Art(Korea)

<Contemporary Art 20 of Korea & China> City Art Museum of GZ(Guangzhou, China)

2015 <Hello Mister monkey> Shinsegae Gallery(Gwangju, Korea)

<Asia Contemporary Art> Jeonbuk Museum of Art(Jeonju, Korea)

<Korea’s Fine Arts of 1980’s> Jeonbuk Museum of Art(Jeonju, Korea)

2014 <Light> UNESCO Center Hall(Paris, France)

2013 <All of korea> White Box(Munich, Germany)

<Environment art> Shinsegae Gallery(Gwangju, Korea)

2012 <Mudeung Story> Today Art Museum/Xianan Art Museum(Baejing, China)

2010 <Hajungwoong Young Artist 10th anniversary>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12 Zodiac Animal Story>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DECENTERED> Arco Art Center/Gwangju Museum of Art/Busan Museum of Art(Korea)

2009 <Mind Topology The Phase of 2009 Korea> National Twaiwan Museum of Fine Art(Twaiwan Taichung)

<Jisim Island of attainable love> Gejea City Art Museum(Gejea, Korea)

2008 <Playing> Seoul Art Center-Hangaram Art Museum(Seoul, Korea)

<Present condition&View of the Gwangju Fine Arts> Insa Art Center(Seoul, Korea)

2007 <Trace Root Unfolding Korea Stores> Madrid Museum of Art(Madrid, Spain)

<Songzhuang Culture & Art Festival-Art Linking> Songjang Museum(Baejing, China)

<The field of Gwangju Art World> Gwangju City Art Museum(Gwangju, Korea)

2006 <6th Gwangju Biennale–Fever Variations> Gwangju Biennale Exhibition hall(Gwangju, Korea)

2005 <Silent Light, Clear Energy> Guanghou Museum of Art(Guanghou, China)

<Made in Gwangju>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Environmental Art Festival> Okgawa Museum(Jeonnam, Korea)

Sketch trip to China Exhibition (Guansanwol Gallery, China)

2004 <Four phases of life >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Dreaming fairytail world> Lotte Gallery(Gwanju, Korea)

<Ego>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2003 <Hajun Woong Invitation Exhibition ‘Light 2003’> Gwangju Museum of Art(Gwangju, Korea)

<Ucanny> Gallery Lamer(Seoul, Korea)

<Gwangju>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Artists and painting book> Lotte Gallery(Gwanju, Korea)

<China tour 3,256km> Shinsegae Gallery(Gwanju, Korea)

2002 <Portrait of young artist> Shinsegae Gallery(Gwangju, Korea)

<Jump 21> Nam-do Art Center(Gwanju, Korea)

2001 <Form and criticism> Moodeung Art Center(Gwanju, Korea)


2020





작가노트


풀다(解)

현시대는 정신과 물질,인간과 인간,인간과 사물이 상호 공존하도록 배려나 기다림의 여유를 용서하지 않는다. 

필요한 물질은 순식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며, 감쪽같이 인간의 눈을 현혹시킨다.

또한 과학이 극속도로 발전하였고,누구나 폭넓고 깊은 정보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다. 

심지어 손가락 끝의 버튼하나로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인간을 물질적 도구로 만들며,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계층을 만들어 구분하게하고,계급화하여 판단하게 한다.

혹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삶에 혹은 자연환경과 얼마나 오랜기간 동행할 수 있을까? 

실용적이고 편리한 삶을 살고자 만들었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의 수레바뀌에 얽혀버려 인간은 기계의 부속처럼 살아가야한다.

나는 이러한 정반합(正反合)의 옮음과 그름의 이중적 시각에 명명되어지는 것을 넘어 다중적 공존방식의 삶에 적극 상상의 날개를 붙여본다.





형상, 그 너머의 감각과 사유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일상 속 비범함의 발견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어느 순간 특별한 것으로 빛나며 눈에 혹은 마음에 꽂힐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어떤 사물이나 풍경 속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 대한 회상 속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혹자는 그러한 순간을 예민한 감성으로 포착해서 제시하는 일이 예술이고 예술가의 역할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마주하는 상황 그리고 대상 사이의 긴장감과 개연성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한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는 통찰력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김상연의 작업형식은 수인판화, 흑백회화, 부조형 조각, 설치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다양한 작업형태를 시도해 보는 정도에 그치는 반면, 김상연의 경우 질과 양적인 면에서 시도의 차원을 넘어서 몇 가지 작업방식을 일관되게 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형식이던지 김상연 작업은 형상의 등장이 특징이다. 김상연의 형상은 일상에서 발견된 것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그의 형상은 다소 뒤틀리고 비유적 사유를 덧입은 모습으로서 낯익은 듯 낯설다. 김상연이 제시한 형상은 형상, 바로 그것이 아니라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감각과 사유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상 너머 인식의 세계에 관한 메타포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사물의 고유 개념과 작가의 인식체계가 긴밀하게 교접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김상연의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 감정의 개입으로 시작하지만 다수의 공감을 획득해 내는 묘한 매력이 있다. 수인판화와 같은 조용한 작품은 담담함으로, 흑백회화와 같이 강렬한 작품은 거친 진정성으로, ‘공존-샘’이나 ‘풀다’ 시리즈는 집적의 힘이 주는 응집력으로... 그의 작품은 다분히 주관성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소력이 있다. 이는 형상에게 부여한 의미(meaning)에 대한 작가의 의도(intention)가 명확하고 또한 설득력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김상연에게 그 의도를 개발하고 훈련하기에 중국유학, 특히 습인 수인판화의 습득과정은 매우 유효한 경로였다.

대상,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김상연 작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1980년대 한국미술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1980년대 한국미술은 서구 모더니즘 계통의 단색주의 추상미술과 현실 참여적 민중미술의 대결장과 같은 구도였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극단적인 이원화 현상은 창작과 비평 양쪽에서 펼쳐진 양상이기도 했다. 80년대 시대 상황과 모더니즘의 반대급부로 등장한 리얼리즘의 열풍 아래 ‘반 모더니즘’과 ‘탈 모더니즘’이 당시 미술을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한편 이러한 80년대 미술의 이원적 범주화를 거부하는 평자들은 민중미술 이외의 제3의 미술경향들에 대해 ‘형상미술’, ‘비판적 리얼리즘’, ‘삶의 미술’, ‘8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 ‘트랜스 모더니즘’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80년대 미술은 ‘형상’이 대세였고, 그것은 형식에서 내용으로 전환, 구상회화로의 복귀, 전통적 기법 및 서술성의 회복, 드로잉에 대한 재인식, 풍부한 이미지로 귀환 등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김상연은 민중미술의 열풍이 어느 지역보다 강렬했던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다. 김상연과 같이 광주의 오월 현장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이 격렬했던 시대에 대학을 다닌 자라면 누구라도 사회비판적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예술의 사회적 발언에 대해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김상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와 정치적 현실에 대해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표출보다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조와 은유의 다양한 시각화 방식에 대해 더욱 고민한다. 즉 타인 혹은 집단의 눈으로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내적 시선을 통해 사회와 인간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였다.

김상연이 중국유학을 선택한 이유는 동양인으로서 동양철학을 이해하고, 그 철학을 예술적 조형언어로서 표현해 낼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양 노신대학에서 현대 수인판화를 1년 배운 후 다시 중국미술학원(구 절강미술학원)에서 습인 수인판화를 공부하게 된다. 당시 중국미술계의 상황은 개방과 더불어 서양미술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고 전통적 방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전통 수인판화는 어려운 기술과 습득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중국 내부에서 조차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판화기법이었는데, 김상연은 운 좋게 전통 기술자에게 2년 동안 각과 찍는 기법을 습득하게 된다. 습인 수인판화 수업은 그에게 동양인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양적 세계관을 조형화시키는 방식을 익히게 한다. 중국유학은 동양인의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무엇보다도 광주정신을 어떻게 재해석해 내고 발현시킬 것인가에 대한 숙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매체의 사용, 복합적 성격의 표출

주제적인 면을 차치해 두고,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동시에 실행한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끈기, 그리고 뚝심과 추진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김상연은 서양화로 미술에 입문하여 물을 사용하는 수인판화, 먹을 사용한 흑백회화, 전각과 나무 조각, 설치작업 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매체의 근간에는 늘 회화적 요소, 즉 형상을 그리고 채색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김상연의 수인판화는 하루하루 큰 변화 없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일상의 기록이자 평범한 사물에서 발견한 사유의 끄트머리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일상의 것, 주변의 것, 소소한 것들을 소재로 유연하고 담담하게 고요한 울림을 전달한다. 그 어떤 사물 하나를 취할 뿐인데 종이와 물 사이의 충돌과 번짐은 세상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 깊고 오묘한 맛을 낸다. 반면 아크릴 물감과 먹으로 행해지는 흑백회화의 경우 강렬하고 거칠고 즉흥적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가 인간이든 사물이든 동물이든 감추고 싶은 감정 혹은 잠재된 욕망이나 본능이 적나라하게 해부 당한 듯 묘한 불편함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수인판화에서 보여준 형상과 흑백회화에서 보여준 형상은 일상의 엇비슷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특성에 따라 어법과 전달력은 매우 다르다. 김상연에게 수인판화가 감성의 절제를 위한 수련장이라면 흑백회화는 분출하는 감성의 통로로서 상호보완의 매체가 된다. 이렇듯 김상연의 작업은 다양한 형식만큼이나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거칠지만 섬세하고, 비유적이지만 본능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위트 있게 강인한 정신력과 유연한 감수성 사이를 넘나든다.

형상, 그 너머의 감각과 사유

김상연은 초창기 욕망의 문제를 다루었다. 객관화되고 보편적 욕망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욕망, 즉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관심사였다. 이는 물질 중심적 사고와 무차별적 경쟁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불균형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몸만 커버린 인간 존재에 대한 자조이자 반어법이었다. 욕망에 대한 관심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부유하는 일상’과 ‘육식’, ‘존재’ 시리즈로 심화된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실존에 관한 물음은 자아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치열한 몸부림을 대변하듯 주로 표현주의적인 격렬함이 넘치는 흑백회화로 표현되었다. 특히 김상연은 사물의 형상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의 극대화를 추구하였는데, 검은색은 눈을 현혹시키지 않고 본질을 왜곡하지 않으며 사족 없이 본질적인 것을 담아내기에 제격이었다.

김상연의 그림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역시 ‘존재’ 시리즈 중 검은 소파이다. 규모의 거대함과 검은 먹색의 강렬함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검은 피를 연상시키는 먹물의 흘림은 상당히 도전적인 인상을 남긴다. 거대한 규모로 화면을 꽉 채운 검은 소파에는 사람의 형상은 없지만 그 소파를 점유했던 존재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바깥세상에서 부대끼며 상처받은 정신과 육신을 소파나 침대에 맡긴다. 따라서 인간의 체취와 흔적을 가장 오랫동안 머금고 있는 사물이 바로 소파나 침대이다. 그 사물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일체의 가식이 없는 자연 상태, 즉 존재의 본질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장이 된다. 비뚤어진 소파의 다리는 현 시대의 비틀거리는 가치관과 존재의 불안함을, 과장되게 기다란 등받이는 불안한 자의식을 대변한다. 거친 재질감, 먹의 충돌과 흡수, 거친 붓 터치에 담긴 기운은 존재의 흔적과 체취, 나아가 존재의 심리상태까지 반영한다. 검은 소파가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촉각적이며 후각적이며 감성적인 이유이다. 존재의 본질을 담아낸 형상으로서 소파의 발견과 거칠고 격렬한 검은 색의 사용은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보여주며, 형상 너머의 감각과 사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공존의 해답, 나를 드립니다.

욕망과 실존의 문제를 처절한 외침으로 구사했던 김상연의 관심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 공존의 문제로 확장되어 간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발표한 ‘공존-샘’ 시리즈에서는 5,000여 마리의 원숭이 형상이 연결되고 얽히고설키어 늘어뜨려진 설치작업을 보여주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함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서 샘은 원천적 기운, 즉 위기의 시대 인류가 살아나갈 힘이 공존에 있음을 의미한다.

2010년 발표한 ‘解(풀다)’ 시리즈에서는 날개를 펼치고 무리지어 날아가는 소떼를 형상화하였다. 그것들은 거대한 무리가 속도감 있게 날아가는 형상으로서 색감 또한 검은색, 녹색, 붉은색 등으로 일종의 긴박감이나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보며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과 실태, 해결책과 미래가치에 대해 분석 없이 투쟁과 진압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 사회현실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하였다. 소는 농경사회, 말은 유목문화에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상호 간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소중했던 가치의 상징이다. 소와 말을 결합한 동물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을 의미하는 물고기 지느러미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억압과 갈등, 문제 상황에서의 해방을 형상화하였다. 김상연은 소와 말과 물고기의 결합을 통해 우리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존재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나? 에 대한 중용적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김상연의 회화는 대체로 규모가 크다. 그중 흑백회화의 경우 화면의 규모와 함께 강한 검은 색이 압도적이다.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도시 산수’는 검은 덩어리가 흰 화면을 꽉 채운 작품이다. 얼핏 보면 추상적 형상 같지만 검은 덩어리의 밑 부분에 삐쭉이 보이는 나뭇가지를 발견하곤 검은 덩어리의 정체가 검은 봉지임을 알 수 있다. 추운 북경, 허허벌판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자기 집 화분을 보호하기 위해 검정 비닐봉지를 싸놓은 광경을 목격하고 하찮은 비닐봉지를 이용하여 생명체를 보호하는 생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상연은 이 사소한 풍경에서 도시인들의 자연(산수)을 보는 마음가짐을 보았고, 나뭇가지를 덮어씌운 검정 봉지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세와 심성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검은 덩어리가 주는 압도감이 너무 강해서 일까? 작가의 의도와는 반대의 감정들, 예를 들면 억압, 구속, 공포와 같은 불편함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형상성의 극대화를 위해 화분을 생략한 검은 봉지만으로는 작가의 주관성을 넘어선 공감 확보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공존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김상연은 존재와 존재 상호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 방식은 결국 버리는 것, 자신을 줄이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을 줄인다는 의미는 세상의 중심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다른 사람의 주장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동양화의 부감법으로 그려진 기다란 팔을 뻗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듯한 포즈로 고릴라 얼굴의 사람이 서있다. 어떤 작품은 가슴을 파헤쳐 심장을 도려낸 형상을 하고 있다. 심장을 도려내서라도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나를 드립니다.’를 외치는 못생긴 고릴라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 개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줄임으로서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김상연은 형상을 기반으로 한 개별언어의 발현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개별언어의 발현이란 결국 창작 주체인 ‘나’의 존재와 나를 둘러싼 소박한 세계에 대한 강렬한 의식의 투사라 할 수 있다. 김상연은 개인적 욕망에서 자기 존재의 본질과 자아를 찾아가는 장으로서 예술에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 속에서 공존의 해답을 모색하는 예술로 작품의 주제를 심화시켜왔다. 특히 ‘解(풀다)’, ‘나를 드립니다.’ 등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계와 관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법을 제안해 왔다.

물질문명과 경쟁사회가 생산해 놓은 왜곡된 가치관이 판치는 현 시대, 올바른 신념과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이 혼란스러울수록 삶이 각박해질수록 문화나 예술의 우선순위는 낮아지지만, 반면 그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김상연은 가치 있는 예술 활동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책무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는 오랜 시간 살아남을 예술, 미래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즉각적 반응보다 한 발짝 물러선 상태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자 노력한다. 자연스러운 변화, 즉 내적으로 무르익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 내는데 기여하고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김상연에게서 작가적 성공을 향한 불타는 열망을 보았다면, 최근 그에게서는 예술가적 사명과 예술적 신념의 실천에 대한 고민과 의지를 강하게 느꼈다. 김상연의 앞으로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존재,종이위에 먹,35x30cm,1997


존재,종이위에45x35cm,1998


존재,종이위에 먹,330x240cm,2003


존재,종이위에 먹,330x110cm,2002


존재,종이위에 먹,110x80cm,2003


존재,종이위에 먹,110x80cm,2000


존재2,종이위에 먹,110x80cm,2002


세월2014,나무컷팅위에 아크릴,55x55cm,2014


역사,종이위에 먹,110x80cm,2002


역사,종이위에 먹,110x80cm,2002


도시산수,캔버스위에 먹,아크릴,291x197cm,2012


존재2,종이위에45x35cm,1998


존재3,캔버스위에 먹,아크릴,291x159cm,2010


존재4,캔버스위에 먹,아크릴,291x159cm,2010




김상연 판화의 "동아시아적" 성격




펑 쉬민

중국미술대학 회화학부 판화과 교수

김 상연은 1966년 한국 광주에서 출생한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이다. 1986년-1992년 전남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1994년 중국심양의 노신미술대학 판화학과 연구생으로 수업하였고, 1995년 중국미술대학 회화학부 판화학과의 전통목각판화작업실“자죽재(紫竹齋)”에서 수강하며 천 핀차오 선생에게 '조판조각'기법을, 왕강 선생에게 ‘두판수인인쇄’ 기법을 배웠다.

1996-1999년, 중국미술대학 판화학과 연구생으로 우 지더, 주 웨이밍 교수 지도하에 전통목각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수인판화의 창의성을 접목하는 실험과 연구에 매진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과거 김 상연은 서구 현대미술을 중점으로 공부한 바 있으니, 재료적 특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매우 훌륭한 서구적 심미안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대학 졸업 후, 광주 인근의 농촌에서 여가적 성격의 화가로써, 들판의 배추, 무우, 혹은 강가의 물고기 등의 소재를 즐겨 삼아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물, 혹은 사물들에 매우 의도적인 시각적 변형을 탐색해 보기도 하는 한편, 철저하게 발가벗긴 맨살인 날것을 드러내 보이곤 하였다.

이런 점은, 우연성에 의지한 유희라기보다는, 쉼 없는 반복 작업을 통해 사물각각에 내재된 정감을 여과하고 추출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부연하자면, 일종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생명 혹은 운명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 시정이 넘치는 슬로건으로 나름의 독특한 심미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생활속에서 지극히 편안한, 지극히 정적인 관조상태의 심미 단계에서 느슨해지지 않고 농축된 객관성을 포착하려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한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사유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고, 반면 유난히 두드러진 “觀”,“境” 혹은 세심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은 특히 서구화가 급속히 진행된 국가주의 하나이다.

문화적 충격 혹은 충돌의 과정에서 서구모더니즘 가치관의 만연으로 야기되는 일종의 핵심적 사안이 가지는 의미의 특수성 외에, 민족문화의 동질성의 쇠퇴는 필연적으로 자국문화에 대한 고찰과 반성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장 치룬은 그의 저서 '아시아의 현대화'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한국 학술계의 기본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화여대 정 현경 교수의 국제 학술회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근 현대 서구문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되 균형감각을 갖춘, 신학 교수이자 기독교도로서의 그녀는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나의 팔은 샤머니즘이며, 마음은 불교도이다. 나의 우측 뇌는 유교도이고, 좌측 뇌는 기독교도이다. 공개적인 언어는 기독교의 언어이다. 즉 나의 일생에는 불교, 샤머니즘, 유교전통의 실존과 아울러 역량(力量)과 위험을 내포한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다." (독서 1994.12) 그녀의 태도를 '동양적 가치관 중심'이 무너지고 고립되어 내뱉은 신경질적인 짜증으로 단정 지을 이유는 없다.

다만 자국민족의 서구화 과정 속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내면으로 부터 표출되어 점차 발아하는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개방된 인문학적 소양의 비판적 이성이라 할 수 있겠다.

김 상연 사유체계의 심연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은, 어쩌면 그가 속한 민족문화에 대한 시대적 자각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예술이라는 형식 속에서 현대미술의 동양적 성격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죽재(紫竹齋)'라는 공간에서 그는 숱한 실험을 거치며 매우 유효적절한 방식의 표현언어를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 중국의 전통판화에도 새로운 시대성을 고민케 하는 촉매작용을 하였다. 중국의 판각인쇄술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隨)시대의 개화기에서, 당(唐)시대에 기술적 완결을 갖추었고, 오대(五代)에 이르러 널리 보급되었으며, 송(宋)나라 때는 기술의 정교함이 절정을 맞이하였다.

당나라 함통(咸通)9년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저수급고독원(抵数给孤独园))은 기법적 정교함이 원숙한 경지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화가와 조각공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문학지의 삽화형식인데 세계 최고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통목각공방인 '십죽재(十竹齊)'의 탄생에 이어 왈 종호(曰從胡)씨가 발명한 “두판”채색기법은 우수한 표현기법을 구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가치에서 줄곧 복제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 어느 화가도 목판 인쇄술을 수묵화와 같은 자발적인 연구 및 창작의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음으로 인해 독립된 예술형식으로 발전 계승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중국 현대판화는 개화기에도 전통판화 영역에서 만큼은 충분한 창작조건이 구비되지 않았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 근현대 문화는 오직 진화론의 테두리 안에서 제멋대로 합종 교배되어 갑작스러운 세계사의 재난과 격랑에 휩쓸리게 되었다.

또한 무기력하게 침체되었던 초기의 현대판화가 혁명의 노도 속에서, 또한 혁명의 성공에 힘입어 가까스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노신 선생의 관심과 지지 외에 '십죽재'이래 보존된 복제기술이 '영보재(荣宝斋)'에서 복원되었고 '두운헌(朵雲轩)' '자죽재(紫竹齋)' 등의 전통목각공방의 존속에 힘입어 다행히 전통기법의 계승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죽재'라는 공간에서 습득한 기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그의 성과는 우연이라기보다는 남다른 노력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가 이곳 '자죽재'를 접해보고 바로 수업을 결심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전통판각기법이 과거의 수학경험에 비해 더더욱 그의 내재된 창작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음에 틀림없고 그 역시 수차례 시인한 적이 있다. 더욱이 복제의 노역에서 탈출하여, 자유롭고 독립된 예술형식을 만들어, 막연한 상상에 그쳤던 가능성을 현실로 이루어낸 것이 그의 값진 성과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상연의 두판수인판화는 중국 십죽재 계통의 전통복제기술에서 제련하고 정제한 새로운 판화형식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예술적 성과이다.


작품속에 내재된 이러한 특성과 재능은 예술이란 영역의 존재의의, 또는 존재해야만 하는 가치와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판화형식과 기법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공유된 지식을 바탕으로 개성화된 일련의 실천작업에서 수확한 새로운 규칙임과 동시에 판화와 관련된 기존의 지식체계를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소위 문화의 축적에서 창조로의 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판화가 중국 동료작가들에게 있어 자극제가 됨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의 예술적 고집과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한국 현대판화계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제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예술은 무엇일까? 왜 다른 것을 포기하고 예술을 하려할까?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세기 고갱의 명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갈까?'라는 그림을 떠올려 보면, 인생과 인성에 대한 애틋한 정감, 우울한 정서 이면에 내재된 배려와 관심, 이러한

관심은 비록 추상적이고 모호하긴 하나 보편적 인류에 내재된 감정이다.

만약 고갱이 인류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화두가 서구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 혹은 인류가치에 대한 재평가라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 김 상연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대미술의 동양적 사유방식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기보다 천진하고 거짓 없는 순수성으로 유혹과 탐욕이 넘쳐흐르는 현실의 세계속에 인간이라는 영원불멸의 명제를 선택, 염두에 두고 있음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출처: 2003년 No2 총제22 P53-55

중국판화

인민출판사


존재,180x123cm,종이위에 수인화,2019


역사11,종이위에수인회화,2020


존재2,180x123cm,종이위에 수인화,2019


보길도곡수당-4,종이위에수인회화,2018


보길도곡수당-3,종이위에수인회화,2018


꽃,종이위에 습인인쇄및회화.180x130cm,2018


경주 탑2,160x150,종이위에 종합재료,2017




김상연의 인간학 _ 나를 드립니다


작가 김상연을 처음 만난 것은 삼년전이다.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평론가 등이 만나면 의당 전시 등 미술계 얘기들을 건네곤 하는데, 그와는 날씨, 교통, 음식 등 사변적인 담소 등으로 먼저 친해졌다. 배려가 큰 편안한 성품의 작가와 작업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은 6개월 남짓 지난 어느 날부터였다. 가장 인상적인 그의 말은 ‘작가라서 행복합니다.’이다. 작업에 빠져 사는 삶에 대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평화가 충만한 목소리였다. 예상치 못한 말이라 강하게 여운이 남았다. 작가로서 살아온 30여년의 세월이 힘들지 않았을 리 없다. 세속적 관점에서 스타작가의 반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시장의 블루칩도 아니지만 그는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참으로 부러운 말이다.

문득, 그는 작업에 대해 ‘미침’을 가졌거나 ‘미침’에 있거나 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조선지식인의 내면읽기』(2004)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완전히 매료되어 누가 뭐라하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아가는 소신있는 ‘미침’의 연장선상에 바로 그가 있다. 그는 예술에 미쳐있는 작가 오덕후(御宅)이다. “예술을 통해 인간이 되는 길을 걷고 있다”는 그의 말이 실질적이고 명징한 언표(言表)로 와 닿는 것은 이같은 그의 ‘미침’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삶은 회화를 전공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예술을 수련한 시기인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돈과 아픔의 도가니였다. 청년의 청춘열병과 시대적 고난이 함께 했던 예술 학습기를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예술에의 갈증과 사회적 난제는 지독한 열병처럼 정신과 감각에 집중하게 했고, 곧 동양 판화의 정신사를 찾아 중국을 향하게 했다. 1994년 중국 유학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인간과 자연 본성에 다다르게 하는 예술 성찰의 길로 선택된다. 그는 “자신의 옷을 찾아 동양철학을 배우고자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효과적인 방법이 오래된 동양인쇄술의 꽃, 수인판화(水印版畫)”를 익히는 일이라 여겼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감각과 정신이 합일하는 동양적 사유와 표현 세계로 향했던 중국에서의 시간은 현재의 작가적 행보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2000년부터 다시 광주에서 작업을 선보일 때 그는 질료나 사유의 경계를 지니지 않은 채 오직 인간적 감각기개(感覺氣槪)를 무한히 확장하는 데로 나아갔다. 회화, 수인목판화, 드로잉, 목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는 <욕망(육식)시리즈>(1990-2000),<존재시리즈>(2000-2012),<실존시리즈>(2008-2012),<공존시리즈>(2006-2014),<풀다시리즈>(2010-),<나를 드립니다>(2009-) 등은 모두 수행적이거나 성찰적인 주제를 강렬하고도 유쾌하게 담고 있다. 2019년 올해 전시는 자연의 물질과 인간의 절제된 감각이 만나 완결된 ‘인간학_감각기개’라 명명할 수 있는 ‘수인(水印) 회화’가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와 대조를 이룰 거대한 사물, 의자의 <존재시리즈>, 그의 염원과 화해의 메시지를 행위적 설치로 드러낸 <풀다 시리즈>, <나를 드립니다 시리즈> 그리고 특별히 목판 아카이브를 만나게 한다.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인간’과 표현 밑둥에 있는 ‘목판’ 아카이브가 함께 소개되는 터에 작가도 설레고 보는 이도 흥미진진하다.

사물과 나 _ 숨 잇다

“의자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그렇거니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최소한의 형상만 남기고, 나머지 사실적 여지는 어둠(먹)속에 숨겨버린다. 그러면 먹의 형상에서 느껴지는 충격 뒤에는 얼마간의 여운이 남게 된다. 이것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공간의 텅빈 사이를 말함이며 일순 모든 물질적인 실존을 떠나 정신을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곳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기운생동이다. 하여 나는 그린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온몸으로 숨쉬고 있다고나 할까. ” (작가노트)

김상연의 작업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비롯한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난 검은 의자 <존재>의 강렬함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숨을 멎게 하는 먹빛이 강한 의자는 2009년부터 2012년 제작되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광주에서 전업 작가의 삶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을 무렵의 그는 눈과 정신이 보다 예민해졌고, 이전 중국에서의 모든 감각훈련의 여정들이 자신만의 특성으로 녹아 빛났다. <존재시리즈>로 알려진 의자는 약 3미터 높이의 캔버스에 어두운 먹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마주하는 순간 숭고(the sublime)를 먼저 안긴다. 캔버스의 크기와 먹의 심층이 시선을 강탈한 사이 슬며시 빛바랜 존재의 흔적이 신호를 보낸다. 쾌와 불쾌, 존재와 부재, 인간과 사물이 호흡하는 작가의 의자는 이전의 의자가 지닌 많은 상징과 메타포를 잊게 한다. 절대권력, 권위의 위압적 존재와 다르게 그는 의자는 그저 검은 무명옷처럼 질박하고 절박하다.

의자라는 사물을 통해 ‘사소함이 거대함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그의 말뜻은 사물과 자신의 관계 안에 거하는 성찰과 정서의 형사(形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언급을 들어보자. “자신의 게으르고 혼탁한 정신을 혼탁한 망치로 때리는 숭고함으로, 우러름으로, 권력으로, 이 시대에 통하지 못하고 섞이지 못한 쓸쓸한 존재자로, 감출수록 드러나는 존재의 얄팍함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거대하고, 기괴하게 그린다”. 즉 자신의 성찰 과정에서 사물은 각성을 생기(生氣)시키는 동인인 것이다. 빛이 바래있는 의자의 자리는 사물과 일체가 되었던 자신이거나 누구인가의 흔적으로, 부재하지만 존재의 기억을 담아 인간과 사물이 서로 숨을 잇는 순간을 환기시킨다. 이는 <존재시리즈> 이전 <욕망(육식)시리즈>에서 본능적이고 폭력적인 욕망의 인간 탐구를 관통한 이후 절제와 통찰의 시간을 향해 있는 그의 행보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의자나 난로처럼 존재적 관계의 사물 외에 그의 드로잉이나 판화 등에서 드러나는 파편적 관계의 사물에 드리운 시선 역시 각별하고도 신선하다. 2000년 제작된 33점의 그림과 글이 있는 그의 화첩 『생활지음(之音)』만 보더라도 삶 가운데 스치는 사물들에 눈길을 주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위트와 기지가 넘친다. 가시와 머리만 있지만 두 눈은 살아있는 생선이나, 엉켜있는 전선들, 혼자 서 있는 나무, 낡은 오디오로 표현하는 음악의 바다, 담배꽁초 수북한 머그컵 등. 그의 화첩은 그의 생활에서 기인하는 생생한 에세이다. 그리고 깎고 문지르고 붙이는 다양한 조형적 행위가 커피를 마시는 것이나 식사를 하는 것처럼 삶의 자연스러운 순간처럼 곳곳에서 숨을 이어가고 있다.

나무와 종이 그리고 물 _ 하나 되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여러 시리즈들은 인간적 성찰이자 예술적 수행의 과정들이다. 그의 수행적 조형 행위는 세가지 주요한 질료로 환원된다. 그 하나가 나무이고, 다른 하나가 종이 그리고 물이다. 자신의 옷을 찾겠다며 떠났던 그의 ‘진리와 방법’의 해법은 일차적으로 중국에서 발견한 ‘습인수인판화(濕印水印版畫)’에서 였다. 일반적인 의미의 판화와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그가 주목한 것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구하는 도구나 질료의 표현 가능성과 인간의 감각과 결합의 지점이다.

서양 프레스 기법과 다르게 크기와 판을 규격화할 필요없이 문지르는 방식에 기초하여 ‘인간의 초감각적인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순간의 인쇄기술’ 연마는 이와 같은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기초하였다. 작가와의 대화 가운데, 이는 완성된 결과물로서 예측 가능한 범주를 너머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획득한 도구들의 인간적 감각화’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며 그들이 제공해준 무수한 생명들과 더불어 순환하는 존재로서 예술적 성찰과 표현 역시 자연의 순환 안에서 호흡할 뿐이다. 이와 같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순환의 한 프레임을 작가는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작업을 아우르는 근원적인 질료로서 나무와 종이는 자연에서 기인한 존재 기저(基底)의 장치이다.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 속에 예술적 사유를 인간적 성찰로 풀어가고, 그의 사물과의 관계나 절제의 순간을 연마하는 수행적인 행위는 복제 목판화 연구에서 비롯하였다.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1996년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1786-1856)의 <부작란도(不作蘭圖)>를 1년 동안 연구하며, 120장의 복제를 완성하였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사물에서 정신을 해방시키는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사실상 무아(無我)와 경지(境地)라고 해야겠지만, 집요한 연마의 시간은 그를 물질과 관계의 고정성으로부터 감각 조형의 초월적 확장으로 이끌었다. 그의 찍고, 그리고, 깎고, 붙이는 다양한 방식의 조형 실험이 어떤 경계도 갖지 않음은 이 같은 체현(體現)이 관통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는 포스트모던의 패스티쉬(pastiche)와 같은 혼성적 결합과는 다른 어떤 조형도 절대적 유형으로 고착되지 않으며 그것의 원형이 자연과 수행적 인간으로부터 기인하는 준거에 의한 것이다.

나무와 종이 그리고 물은 사실상 자연의 원초적 물질들이며, 화학적이거나 물리적 작용이 가해져서 변형을 한다 해도 본연의 융통과 순환의 작용일뿐이다. 흥미롭게도 작가의 작업에서는 하나가 되기도 하고 나눠지기도 하는 이들 질료의 자유로운 매체 활용을 만나게 한다. 예컨대 작가가 즐겨 쓰는 나무는 판화의 지지대이면서 그 자체로 목조각 설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즉 그의 <풀다>, <나를 드립니다>, <뫼비우스의 띠> 등은 나무라는 질료에 기초한 조형 설치이지만, 나아가 판화의 원형적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

<풀다>는 날개달린 소들이 떼지어 대지를, 하늘을 횡단하는 모습이다. 각각 크기가 다른 유사한 생김의 수백 또는 수천의 신화적 동물들이 옻칠의 윤기를 머금고 한가득 달려오는 모습은 소리없는 시각적 외침과도 같다. 이 작업은 장소에 따라 펼쳐지는 모습이 달라지는데, 정해진 크기나 수량은 가변적으로 공간과의 기민한 융합에 의해서만 결정될 뿐이다. 어떤 공간과의 만남에 의해 달라지는 그의 작업처럼, 사람은 언제나 상황과 변수에 의해 삶의 외연이 결정되기 일쑤다. 그의 <풀다>는 특정한 요인에 의해 달라지는 삶의 순간순간에서 자신의 내외부로 얽혀 있고 맺혀 있는 것을 사라지게 하는 해원(解冤)의 간절함, 역동적 움직임, 그리고 그에 따른 자유가 있다.

인간학, ‘나’였다가 ‘너’였다가 그리고 ‘나’

<풀다>보다 앞서 제작된 <나를 드립니다>는 그의 자화상이다. 예술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목소리에 대한 이미지가 <나를 드립니다>일 수도 있다. 화면 속 남성은 노란 개나리꽃을 가득 맞고 있거나, 파란 물줄기로 정수리부터 강타당하거나, 흰 눈을 수북이 맞으며 팬티만 걸친 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발가벗고도 기꺼이 세상을 마주하는 그림에서나 목조각 설치에서나 남성은 아팠던 순간도, 깨우침의 순간도, 행복의 순간도 모두 자신의 길이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눈빛이다. 언제나 아픔과 치유를 동시에 선사하는 세상을 향해 자신이 먼저 손을 뻗는다. 이제 꽃비도, 눈송이도, 물줄기도 모두 맞을 수 있다.

세상을 향해 화해를 보내는 그림 속 남성은 자신이거나 혹은 누군가이다. 이미 모든 것을 내놓고 세상과 만나는 그는 자연이고, 사물이고, 또 다른 인간이다. 그의 예술은 곧 인간적 성찰과 수행을 통해 완성된다. 인간적 성찰의 현재적 지점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수인회화’에서 보다 잘 나타난다. 수인회화는 수인판화에서 기인한다. 수인판화는 물의 특성을 이용하여 찍는다는 점에서 유성에 기반한 서양 판화와 다르다. 물을 흡수하는 종이, 물을 머금은 목판, 물을 찍는 바랜의 속도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에, 무엇보다 수인판화는 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 번지는 넓이까지 통제 가능해지는데, 판에 기대어 이미지를 고정하는 것과 반대로 유연한 그림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즉 수인회화란, “통제된 판화이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물의 움직임으로 기운의 생동이라 칭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회화가 ‘그린다’ 라고 한다면, 수인회화는 판을 활용하여 그림을 찍으면서 물의 움직임으로 회화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붓으로 그려내는 회화의 표현에 비해 통제되고 다듬어진 절제의 번짐으로 완성되기에, 고도의 감각훈련 없이는 회화성에 이르지 못한다. 작가는 “판화, 사진, 회화의 보이는 기술적 경계를 허물고 본질적 사유에 직관하는 통로를 만들고자” 수인회화를 수도 없이 시도했단다. 수인회화로 이행하는 그의 실험에서 물질적으로나 화학적 기술로 형상화를 이뤄내는 홀로그램과는 다른 존재 발현의 지점을 만난다. 물과 종이로 이뤄내는 입체적 존재감은 독특하다. 선명했던 ‘나’가 수십의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일 것도 같은 존재로 드러난다.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그 형상이 종이, 나무, 물이 각각이되 모여 다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예민한 대기의 감각들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감각기개의 평온을 찾는다.

2019.05.21.

박남희 (예술학)


브릴런트메모리즈-동행,북서울미술관(현대자동차협업)2017-2


나를드립니다2,나무부조위에 페인팅,가변크기,2014


2008년프랑스 개인전오픈


4포스코미술관


1906,포스코미술관-2019,003


1906,포스코미술관 평면작품-2019013


공존1-광주비엔날레제1전시장,2006


풀다-마이클슐츠갤러리 개인전,서울,2010


풀다,나무위에 아크릴각,가변크기,2015


포스코미술관2019-010


포스코미술관2019,-004


작가노트

사막에서 부유하다.

이 광활한 도시가 사막으로 변했다.

다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감춰진 그 잔인한 이중성, 나는 그 사막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원시적인 눈은 마음을 움직이고 육신까지 즐겁게 움직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눈을 통하여 느끼는 감정은 아주 사소하지만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여서, 공상속에서 떠도는 그 어떤 형상들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잊혀지질 않고 오래 남아, 객관화(개인적인)되고 굳어져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다. 마치 화승이 불경을 한글자 각하고 한번 절하듯이 각인되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화석 같던 기억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다가, 하나의 의미덩어리를 형성하고,

그리고,

다시 화면에 하나하나 표출되고 고정되어, 한 개인의 역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미래를 꿈틀거리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物(사물)을 보는 눈은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인 셈이다.

욕망의 바다-肉食

일상속에서 대상의 실체는 인간의 그 어떤 왜곡된 변명이나 속임수에서도 본연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라는 실체 또한 욕망이라는 덩어리속에서 벗어 날 수는 없을 듯 하다.

이런 욕망의 덩어리에 부여한 길들여진 의미들을 관습적이거나 도식적인 대상인식에서, 비관습적, 비상투적인 새로운 대상인식으로 해체하고 재해석하여 사유의 영역인 의식세계로 들어 가고자 한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일상을 음미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새삼 어렵다. 상대에게 포장하면 할수록 내 속마음은 깊이도 가늠하지 못한 채, 한없이 깊은 바다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 침잠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때론 위안을 주지만, 이것 또한 잠깐 스치는 한낮 거짓일지도 모른다. 그림속의 형상들은 굳건히 그들만의 세상에서 영 나오질 않는다. 너무 단단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처럼 현실과 소원해진 적이 없다. 그것은 단지 어떤 것에 집착이 너무 강해서 일게다. 아니면 좀더 깊어지거나 넓어지고 싶은 욕망에 주춤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그림 속에서 꿈틀대는 형상들은 아주 사소한 일상 속 마주침에서 우연히 지나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온몸으로 후려갈긴 편린들이다. 이 모든 일상의 잔가지들이 들이 모여서 하나의 뿌리를 형성한다. 이제 형상들은 형상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를 놓아버리고, 상상 속으로 노닐고 있다.

나는 의자를 그린다. 이 그린다는 행위는 의자라는 소재를 끌어 들여와 내가 말하고 싶은 인간과 욕망의 관계를 좀더 실제적인 회화방법으로 극대화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우선 친근한 일상적 사물을 내 자신의 시각방식으로 변환, 이미지화 하여 인간의 정신을 새로운 시간이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작용을 하게 한다. 의자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그렇거니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최소한의 형상만 남기고, 나머지 사실적 여지는 어둠(먹)속에 숨겨버린다. 그러면 먹의 형상에서 느껴지는 충격 뒤에는 얼마간의 여운이 남게된다. 이것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공간의 텅 빈 사이를 말함이며 일순 모든 물질적인 실존을 떠나 정신을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곳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기운생동이다. 하여 나는 그린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온몸으로 숨쉬고 있다고나할까.

나는 이제 막 사막으로 소풍을 가려 한다.

신기루가 있고, 낙타가 있고, 선인장들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이런 것들이 얼마간의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사막에서 만나는 그 사물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한다지만, 진정으로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지루하게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다. 나는 그 무미건조한 사막을 이야기하려 생명수 역할을 하는 형상의 조각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막이 바로 인생을 관통하게 하는 광활한 길이므로...인생의 길은 사막처럼 지루하고 사소하게 보이지만, 반복된 움직임 속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아야 만이 큰 깨닳음을 얻을 수 있듯이....


2002년 12월 작업일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