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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ARTIST

마문호

1961. 전남 강진 생 | 1988. 추계 예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3. 무늬 part1(숄츠 앤 융 갤러리)

2012. 행복한 동거(대안공간 꿀)

2008. 열망(광주롯데화랑)

2007.그늘(광주신세계갤러리)

2004.하류. 금호미술관(서울)·롯데화랑(광주)

2000.자생의 꿈. 덕원갤러리(서울)·롯데화랑(광주)

1997.진창. 금호미술관(서울)

1993.바람은 깃발로 만들고. 나무화랑(서울)

단체전

2011. 아트로드 프로젝트 (빤스신. 펑크파마. 마C. 혐엽나이트쇼)

판 아시아 퍼포먼스 페스티발 (광주시립미술관)

백화점 속 유원지 (신세계갤러리,광주)

거시기프로젝트 (쿤스트할레, 광주)

영아트 페스티발(예술무당프로젝트-영역- 대인시장-양동시장-대안공간 미태)

대인 7괘전(대안공간 미태)

2010. 오월의 꽃(광주시립미술관, 쿤스트할레, 광주)

5.18 30주년 대인시장 랩소디(매개공간 미나리, 광주)

막걸리 산책(무돌아트갤러리, 광주)

김환기 국제아트페스티벌 레지던시 프리뷰전(목포문화회관, 신안)

2009. 제3회광주디자인비엔날레-더할나위없는:살림 (광주비엔날레전시장)

2008.제7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제안:복덩방프로젝트(대인시장)

걷다-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졸업작품전(동덕아트갤러리)

국밥집전(담양국밥집)

김환기 국제미술제전(서울 라이트갤러리, 광주롯데화랑)

2007.정해년 테마기획-돼지 꿈을 꾸다(광주신세계갤러리)

전라도닷컴 기금마련전 (광주롯데화랑)

2006.미술가의 꽃(광주신세계갤러리)

제2회 환경미술제-숲으로 가는 소풍 (롯데화랑·옥과미술관·문화공간서동)

대구·광주 뉴비전 모색Ⅲ (광주신세계갤러리·대구대백프라자갤러리)

제4회 영광민미협전-그림으로 만나는 공옥진(영광우체국)

찾아가는 예술여행-김환기를 찾아서(안좌도 김환기 생가)

2005.야생화, 낮은 꽃의 노래Ⅱ(광주신세계갤러리)

제1회 환경미술제-에코토피아를 향해 (광주롯데화랑·옥과미술관)

북쪽가지-그늘/마문호, 최경태, 송용민 (광주롯데화랑)

민미협 영광지부전(영광우체국)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광주롯데화랑) 외 다수

e-mail: maga2009@hanmai.netblog : http://blog.daum.net/maga2009/






신세계-삶을 짓다 (2014)





작가노트


넘실되는 물결

안좌도

하늘

무중력

가로지르는 시멘트 덩어리

섬들

김환기

메리스 메리스

바다

1004개의 점들

늙은이들

형님

오매

자네왔는가

마씨

김환기



신세계-쇼핑전 (2011)





천국보다 낯선

쇼핑과 소비 제품과 작품 일상과 환상 예술과 현실 명품과 비명품의 관계

우리의 현실은 끊임없이 복제되고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사회 도시의 숲

그 사이 사이에서 알든 모르든 크든 작든 빠르게 소비하며 살아간다.

어제 쇼핑한 물건 방금마신 음료수 먹고 마시고 잠자고 하고 쓰고

이 모든 것들이 찰나다.

우리 현대인은 때론 풍요로 아니면 빈곤으로 쇼핑되고 동시에 소비되고 사라지고 추억된다.

세상의 끝은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천국처럼 또는 죽음처럼 미래는 낯설다.


2011



마문호의 그늘



2004년 광주 롯데화랑과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하류”를 테마로 한 개인전 이후, 마문호는 자신의 근작들을 모아 “그늘”이라는 제하의 개인전을 갖는다.

제 7회 광주 신세계 갤러리 미술전 장려상 수상기념 초대전 형식으로 마련된 마문호 초대전은 “하류” 이후 여러 기획전에 출품되어 눈에 익은 작품들을 부분적으로 보완하거나 개작하여 선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미발표 근작들로서 “하류” 이후 작가의 고독한 미적 탐구과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民意를 현대미술의 흐름 안에 담아내는 민중성을 표방하던 일부 작가들이 본질보다는 소통의 방법론에 매몰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문호의 미적 탐구과정은 민중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물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마문호의 주장은 필시 민중성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물음은 변하지 않으며, 본질을 향하지 않은 물음들이 갖는 허구성과 장식성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너무 다듬어지고, 아름다워져 버렸어··· // 글씨와 형태들이 너무 드러나 버렸어···’ 등의 고민을 주변에 털어 놓는 것을 보면, 대부분은 민중성을 묘사하는 회화적 성격에 대한 작가고민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렇다면 마문호에게 있어서 민중성의 본질과 그에 대한 물음이란 무엇일까? 그에게 있어서 민중이란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향해 찾아 헤매는 인간 군상들’인가? 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오늘의 문제에 지나치게 둔감하며, 깨어진 꿈 조각이라 할지라도 가슴에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어쨌든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삶」, 「세상살이」, 「일등광주」, 「그늘-길을 묻다」, 평면과 입체조형물 시리즈 「오래된 정원」 등은 작가의 창작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기도 한 노안의 시골길에서 마주친 구차한 폐비닐과 널부러진 가재도구 부스러기들을 모아 재구성해 놓은 작품들이다. 8m에 이르는 대작 「그늘-길을 묻다」는 시골의 무지랭이들에게 바늘이 찾아 가야할 길을 묻는, 즉 작가로서의 마문호와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고단하고 소외된 자들의 삶의 흔적들이 함께 베여있는 평면 작업이다. 여기에 차용된 구차한 삶의 흔적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지그재그로 바느질되면서 계층 간의 간극에 의해 파생하는 굉음들을 잠재우고 상흔들을 치유해 간다. ‘예술은 결코 진화하지 않으며, 예술가는 진화의 중심을 지그재그로 횡단’하면서 치유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마문호의 예술관은 발전을 최대의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현상과 어긋나는 예술의 역할과의 괴리를 실감케 한다.

따라서 마문호의 예술은 보편적인 시선을 불편하게 하는 예외적인 것들이 차용되는데, 무지랭이들의 이루지 못한 열망을 피어나는 작은 불꽃으로 형상화하는가 하면, 꿈을 찾아 길을 헤매는 세상살이를 돼지에 비유하고, 자신이 손수 기르는 송아지들, 언어의 보편적 기능을 언어의 이미지화를 통해 치유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빛과 이미지의 과장을 통해 단순하게 populisme에 기대는 문화현상들과 현저하게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물음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일련의 언어의 이미지화와 이미지의 언어화는 예술이 갖는 위압감과 기대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작가의 열망이 populisme의 열망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populisme이라 통칭해 부르는 세련된 문화향유자들에게 마문호의 가난한 예술은 다소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예술의 위압감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설치작품, 「가난한, 가난한」은 삶의 현실과 미술을 바라보는 현실의 괴리, 과대 포장된 예술과, 예술을 지탱하는 지나치게 길고 높은 다리, 조악한 문화제도의 다리를 기어오르고자 하는 작가들의 곡예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문호는 더 이상 물감에 매달리지 않는다. 종이나 캔바스 천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반면, 각자 고유한 성질을 지닌 실체를 도입하여 기존 이미지를 대체한다. 따라서 마문호의 예술은 외형상 “하류” 시리즈 그림과는 표현 방법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방법적인 실험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 작가의 소신, 즉 ‘예술은 결코 진화하지 않으며, 예술가는 진화의 중심을 지그재그로 횡단’한다는 견해와는 다소 구별되는 작품들로 이번 전시회를 마련한다. 하지만 “바람은 깃발로 만들고”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형상과 배경의 문제를 통해 예술의 사회성을 부각시키는 작가의 시각은 이번 개인전 “그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소외된, 그리고 주목 받지 못한 자들의 무대를 묘사한 “그늘” 시리즈에서는 “진창”, “하류”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의 다양한 표현매체들을 도입하고 있는데, 자신의 물음에 부응하는 표현 매체라면 주저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를 엿보게 하며, 또 다른 마문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고무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Apparition/Disparition: 너무 보여주지도, 감추지도 말라’ -Isabelle Monod-Fontaine-








깻잎 풍경-2 245x250cm, 포장비닐에 혼합재료, 2010



그 섬엔 떠나진 못한 늙은것들과 개와


넘실거리는 거대한 물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희 들은 짙푸르고 바다도


짙푸르다 슬프다!





가난한 가난한 가변크기 2005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최윤정 ● 미학 ● 미술비평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름은 그가 고통스런 삶을 살았건, 평온한 삶을 살았건 그가 밟아 온 자취들에 대한 표정이다. 이미 그 쓸모를 겪은 물건 역시도 그것이 사용되었던 흔적 하나하나를 주름으로 고스란히 남긴다. 그 주름은 세상살이의 흔적이자, 그 물건 혹은 그 사람의 평생을 빗대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그렇기에 분명 추상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실체를 표면 안과 밖으로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자 ‘속’이다. 설명이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전달과 상대의 무식을 전제로 한다면, 은유는 심적으로 개입하는, 이미 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가깝다. 원리적으로 그것이 이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감성에 있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시적인 미화로 여겨진다 하여도, 은유는 차라리 이성의 한계를 끌어안으면서 이성의 계기를 확장하는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작가 마문호의 형상은 그 ‘주름’이라는 은유를 ‘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익명성’의 몸짓 형상으로 그려내면서 개별이 지닌 보편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현실이다. 서사와 구상의 형식을 빌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가 형상으로서 재건하고자 하는 ‘현실’은 일차적인 비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번 2008 개인전을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 제안 ‘복덕방 프로젝트’ 참여작을 관통하는 그의 주제는 바로 ‘열망’이다. 개인이 지닌 열망, 예술가가 지닌 열망, 시장이라는 장소성이 지닌 열망, 시장사람들의 열망. 그가 말하고 싶은 열망은 단순한 바람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겪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것 혹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 무의식이 지닌 우리네 열망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민중미술’에서 ‘민주미술’을 외치기까지, 추상적인 형상과 원시적인 색면에서 차별적인 재료와 구상에 대한 ‘바느질 드로잉’을 행하기까지, 그의 사유는 예술과 현실적인 삶이 유착될 수 없다는 것에 놓여 있다. 그가 늘 외치는 명제는 예술은 허구요, 예술을 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결코 예술이 표명될 수 없음을, 또한 역으로 예술을 표명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삶이 과연 유관할 수 있는가를 ‘대놓고’ 보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술가에게 삶은 예술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이는 우선 리얼리즘 기반 속에서 예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도구로 여겼던 것에 대한 비판이자, 더불어 여전히 그와 관련한 어떠한 실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이 마주한 솔직한 현실이었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은 현실적 삶보다 가치적으로 진정 현실에 대해 우위에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예술은 허구다. 그가 처한 현실은 보편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담보하기에는 거리가 먼, 오히려 예술행위를 저해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다소 냉소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업관은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바다.

과거 그의 작업은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거둬지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에서 그가 선택한 주제는 이제 현실적 삶의 양태로 그려지는 표정들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또한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는 이를 ‘살이’라 표현한다. 이 ‘살이’는 자기 감정이 보편 속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표정’이다. 이는 기존에 리얼리즘이 행했던 사회 참여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던 그야말로 협소한 구조에 대해서 그 의미 층위를 확장한 계기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보다 솔직하다. 현실은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고, 지금도 그저 마주할 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이’이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현실’과 그가 선택한 주제는 단순히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재료에도 일관되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찌 보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재료는 그의 명제를 타당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틀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에 대한 ‘알리바이’다. 기존에 유화를 통해 동일선 상에서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이제는 이미 그 생을 다한 폐비닐 위에 바느질로 새기는 행위를 통해서 상처의 접합, 재생을 시도한다. 이는 동시에 쓰레기일 법한 재료들이 작품으로 그럴싸하게 보여 지게끔 하는 일종의 교란이기도 하다. 이는 형식을 통해서 꼬집어 보이는 예술의 허구이다. 낯익고 불편한 재료들을 통해서 권위적인 예술에 대해 입을 봉하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요소는 간혹 미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 감상을 의도적으로 저해하는 장치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늘, 놀다/에서 그는 아무 손질도 하지 않은 폐타이어와 그가 즐겨듣는 록음악을 한편에 설치하여 다소 어수선한 전시장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의 바느질 드로잉은 촘촘하게 잘 짜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 바느질이 무녀의 제의와 같이 삶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면, 그 뒷면은 외상의 흔적으로서의 은유이다. 끝마무리로서 길게 늘여진 실밥과, 앞면과는 달리 흐릿한 형상들, 구체적이지 않은 형상들은 자연히 삶 속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간직한 상처이다. 포대에서 감아올린 실마저, 실이 만들어낸 형상이 멀리서 희미한 주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폐비닐의 색상조차도 그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개인과 사회의 숨은 열망들을 두드린다. 그래서 이러한 형상의 이미지들은 다소 보편적이고 서사적이다.

한편 이와 더불어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는 이미지들이 갖는 서사성을 뭉개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그가 사용하는 텍스트는 어떤 경우에서는 작품자체에 대한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안이자 디자인이다. 그 의미에 현혹되어 그 자체 일차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매우 곤란하다. /치워라, 그늘/에 새겨진 FTA와 그 주변에 새겨진 각종 형상들은 그야말로 FTA가 진행되건 아니건 간에 현실은 늘 동일했고 어떤 경우이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저 무덤덤하게 귀찮다며 ‘치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일등광주/는 그 의미와 더불어 문화적 범주가 지녀왔던 권위적인 총체성을 계속된 동어반복으로 오히려 일/등/광/주라는 기표 자체로 물화시켜 버린다. 오히려 자부심을 상징하는 거대 의미로 쓰인 텍스트가 불품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는 결국 일등광주라는 의미에 대한 조소이자 의미자체를 낯설게 하는 효과이다.

삶에 대한 은유, 상처와 봉합, 버려진 것과 재생, 예술과 현실, 실재와 허구에 대한 문제는 조각난 것들, 그것이 물건이건 혹은 사람이건 혹은 사회이건 간에 그것들이 지닌 ‘열망’ 속에 모아진다. 작품에서 ‘열망’은 몸짓 형상이 보이는 표정에 따라 또한 떠오른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지닌 ‘열망’을 평생 모를 수도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파여서 보이는 주름이 아니라 떠오르는 표정이자, 순간에 발견되는 것일 수 있다. 예술로서 의미를 발견하고 동시에 이를 헛된 것으로서 부정하게끔 하면서 만들어 내는 일체감은 분명 그가 선택한 형식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자기 일상 속에서 우러나온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만의 적합한 예술이 되었다. 덧붙여 우리가 ‘열망’을 간직하건 아니건, 발견하건 못하건 간에 삶은 언제나 ‘열망’과 함께 하였고, 그것은 어쩌면 ‘일상’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