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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ARTIST

윤남웅

전남대학교예술대학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 졸업

중국노신미술학원 중국화부 석사


개인전

2015 자하미술관, 서울

2014 제희갤러리, 광주

2007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 / 김진혜 갤러리, 서울

2005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 / 김진혜 갤러리, 서울

2000 롯데화랑, 광주) / 그림시갤러리, 수원

1998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

1994 인재갤러리, 광주 / 종로갤러리, 서울


단체기획전

2016 광저우 교류전 (대학성미술관)

2015 “브라보! 3류” (광주시립미술관, 서울분관)

2014 브라보마이라이프(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

2012 진(進)통(通)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11 냄새 (이즘갤러리, 대전)

2010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 2010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9 한태수교 50주년기념전 (퀸즈갤러리, 태국)

2007 제7회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빛2007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광주의 재발견 (5ㆍ18 기념재단 전시실, 광주)

2006 투영 (국립대만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山傳水 - 거제문화예술회관 (거제문화예술재단, 거제)

2005 생. 노.병.사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現實과理想展 (의재미술관, 광주/ 관산월미술관, 중국)

2004 공간-자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광주비엔날레 특별전‘한국특급’ (광주비엔날레관, 광주).

외 다수 전시 참여


레지던시

2013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스튜디오

2010 무등현대미술관

2009 - 2010 쌈지농부작가

2008 - 2009 대인시장 레지던시


수상

2005 의재 허백련 기념 광주MBC수묵대전 우수상

2003 제6회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수상








작가노트

일상에서 소소하게 만나는 삶의 파편들을 퍼즐 짜맞 추 듯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단어가 片鱗이다.

片鱗(편린)

생선 몸뚱이에 붙은 비늘 한片, 혹은 그것의 片 片들.

비릿한 냄새와 맛에 대한 것의 역겨움.

코나 혀끝으로 느껴지는 냄새와 맛의 느낌.

나무 도마위에 누워서 뚱뚱 하거나 날렵한 식칼에 의해 타닥 타닥 타닥

허공에 튀어 날으는 파편 조각들 片鱗.

비린 편린에 대한 한자어의 나의해석

비릿내 나는 혀 끝으로 침 퉤.퉤.퉤 거리며,

허공에 파편들로 날려 보내는 반 생태적이고 물신적인 비릿한 낱말들

선거공약, 천안함, 종교, 4대강, 인권, 문화코스탁, 벤처, 민주, 권리, 권력 등의 언어들은 우리삶의 비린내 나는 편린의 사전적 의미.



2010




조어도


롯데갤러리 전시 작품


롯데갤러리 전시 작품




롯데갤러리 전시 작품



암뽕순대큰거1


생선상자1-1


바람 그리고 놀다, 2013. 골판지, 지점토, 아크릴, 141x196cmjpg



바람 그리고 놀다, 2013. 골판지, 지점토, 붕대, 아크릴, 140x188cm


바람 그리고 놀다, 2013. 종이에 붕대, 지점토, 아크릴, 195x113.5cm

213x151cm 한지에 수묵채색2003


장날 場

장날 아침 아내는 책상머리에 몇 만원의 지폐를 놓아두고 장날 사야 될 식료품목을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볼펜 글씨로 낙서하듯 써놓고 출근한다. 공식적으로 술 마셔도 좋은 날이다.

近거리에 사는 화가 p형에게 전화약속하고 해질 무렵 90cc 텍트를 타고 농로를 이용해서 바람을 가르며 장에 도착한다.

장판을 처음부터 끝나는 공간까지 좌우를 살펴가며 물이 좋은 물건을 점찍어 두고 되돌아오는 길에 하나씩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꼭꼭 묶어가며 셈한다. 생선은 단골집에 들러 갈치, 간 고등어, 조기, 명태 등등을 사고 여기 거기 들러 열무사고 창량고추, 호박, 마늘 등등을 사고 빨간 고무물통에서 유영遺詠하는 봉어,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등은 주인 눈치를 피해가며, 그림 소재 감으로 즐기다 돌아서서 야시까리한 여자<팬티 열장에 5000원>, <브래지어sale> 영자로 서툴게 매직 글씨로 써서 내건, 골판지 종이가 바람에 펄럭거리고, 시골 장에 이방인처럼, 쑥스럽게 입고 서 있는, 토르소여자 마네킹이 희열 반 고달픔 반으로 바람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場(장날)


어느 곳을 가나 행정구역상 郡 단위의 시골 邑, 面지역에 들어 앉은 5일장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도시의 市場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이다. 도시의 시장이나 시골의 오일장 모두 물건을 사고파는 면에서는 같은 역할을 하지만 문맹률이 높고 통신시설이 없던시절 시골 주민들에게 場은 세상과 이웃을 향해 열린 하나의 소통의 공간이었다.

현금 만지기 어려운 시절 시골집 어머니께선 집안의 곡물을 내어 돈을 보자기에 묶어 머리에 이고서 신작로 10리 길을 걸어서 邑場에 나가시곤 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장날은 바쁜 농사일과 집안일로 꾸밈이 있을 수 없는 어머니의 생활 중에 유일하게 단장을 하는 날이다. 어머니께서는 부엌재를 물과 함께 묻혀 손가락으로 이마에 비벼서 이마에 난 잔털을 다듬고 거울을 보며 머리단장을 하고 얼굴에 향내나는 분가루를 바르고 입술에 연분홍 립스틱을 하고서 제법 예쁜 옷으로 성심껏 몸치장을 했다.

어머니께 이날만은 공식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는 날이었고 돈으로 살 곡물과 아버지께서 주신 작은 돈을 가지고 먼 거리까지 마을 또래 친구분들과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회상해보면 그때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것인데 그 날들은 어머니께 어떤 시간들이었을까?



갱엿


10리길 신작로를 따라 나섰던 場길을 메마른 흙먼지를 쓰고 돌아온 어머니의 장바구니에서는 특유의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고 어린 것들의 기대가 이루어진 날, 장 물건 한 켠에 노란 거름종이에 주먹만한 크기로 싸인 꽝꽝한 갱엿이 들어 있기 마련이었다.

어머니께서는 갱엿을 칼 등으로 두들겨 깨서 어린 자식들 입에 한 덩이씩 물리고 나서 할머니 옆에 앉아 우리 관심과는 상관없는 시집간 고모 소식을 전해 주셨다.


소통


정성껏 치장하고 장에 간 어머니는 장 물건 사는 것만이 아니라 장 어느 한 켠에서 멀리 시집간 고모나 친척을 만나 서로의 삶의 고달픔을 투정하고 위로하며 안녕을 기원했을 것이고,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친정집 어른들을 만나 가보지 못하는 친정집의 안녕을 걱정하고 소식을 나누었으며 몇푼어치 달착지근한 무언가를 사서 친정집으로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먹은 갱엿이 우리집에서 산너머로 시집간 고모가 친정집과 친정어머니의 안녕을 걱정하여 우리 어머니 편에 들려 보낸 엿이었음을 후일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유년시절 나를 그토록 들뜨게 만든 달착지근하고 고소한 그 갱엿 맛은 시집간 고모의 친정집에 대한 그리움의 맛이자 어머니의 친정집에 대한 근심의 눈물맛과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오일장은 단지 물건만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의 애환을 푸는 놀이판이자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소통의 통로였으며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고 만들어지는 또 다른 의미의 광장이었다.



작가 노트


돌이켜보면, 아마 ‘예술의거리’라 불리우기 시작한것은 80년대 후반 무렵쯤 궁동거리 입구 양쪽에 조형물을 세우고 ‘예술의거리’ 라는 간판을 걸어 올리면서 부터다.

그후로 얼마되지않아 이 거리는 쇠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 하였다.

이전, 이 거리는 행정지명인 ‘궁동’ 으로 명목되어져 왔어도 미술인이나 시민들 어느 누구에게나 설득력있게 ‘예술의 공간’ 으로 인식되어져 왔던건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은 他의 도움없이도 자생적으로 문화를 자연스럽게 함께 키워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 거리엔 어렵사리 운영대는 소공연장 하나와 몇개의 전시갤러리, 그리고 대다수의 상점은 미술을 중심으로 매개하는 상업화랑과 표구점, 화방들 위주의 점포들 중심이였다. 물론 수도 서울에 비하여 조건이나 환경은 열악하나 타도시에 비하여 도심에 예술의 정신성을 느낄수 있는 공간하나 갖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의 상징적 표상이였다. 이를 토대로 내세우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에겐 고상한 인품을 관리하는데는 ‘예향’ 만큼 딱히 들어맞고, 정치적 외압없이 이 도시의 정신성을 겉치장하는데는 또한 이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300m도 안되는 거리에 바람넣어 부풀데로 불려서 비엔날레 만들고 문화수도 만든 이 거리에 끝내는 상가 번영회 사람들과 몇몇의 문화행정하는 공무원이 함께 공조하여, 수억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유치 찬란하게 어느날 치장해 버렸다.

그리고 몇몇 유지들끼리 모여 점등식하고 박수치고 9시 지역방송 뉴스거리 까지 제공해 주었다.

이유는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궁동 예술의 거리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에는 조금도 가까이에서 고민해보지 않고 화려한 조명만 밝히면 오지않던 사람이 오고 상가가 번영할거라는 얇은 생각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제시한것은 없다. 이것이 상가 번영회와 행정 공무원들의 발상이다.

지난 70, 80년대 이 거리가 잘나가던 시절 화랑의 주인들은 지역문화와 미술의 시대적 흐름에 얼마나 함께 고민 하셨는지 의문이며, 또한 문화적 가치를 재생산하는데 투자와 노력을 하셨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그 돈 5억이면 ‘예향’임네 하고 외치는 문화도시에 소극장하나 제대로 없는 예술의거리에 작게나마 공연장 하나 만들 수 있고, 궁핍한 미술인들 작품하나 정상적으로 매매 할 수 있는 공공화랑(대안공간)하나 만드는데 투자할 생각은 왜 못하십니까?

이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예술의거리’와 상가들이 현실적으로 번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쇠락한 거리에 아무리 화려한 조명을 쏘아 올린 들 다시 살아나긴 어려울성 싶습니다. 돈은 아깝고 한일은 쑥스럽겠지만 철거하고 희미한 간판 조명이 빛나는 거리를 배회하며, 무등산등을 타고 넘어온 달빛이나 바라 볼 수 있도록 하는게 훨씬 더 아름다운 ‘ 예술의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 전기 계량기는 어디에 메달았으며, 전기세는 「상가 번영회」 에서 자체 분담하시기겠죠?